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2-04-13 10:29:37
  • 수정 2022-04-13 10:30:38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은 20224월의 호국인물로 윤봉길 의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1908.6.21.~1932.12.19.)19086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신문과 잡지 개벽등을 통해 농촌계몽운동의 필요성과 민족의식, 식민 통치 저항정신을 함양한 윤 의사는 1929년 직접 야학을 열어 주민들에게 한글과 신학문을 가르쳤으며, 야학 교재인 농민독본(農民讀本)제작, 농민조합 결성, 농촌진흥을 위한 월진회(月進會) 조직 등을 통해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다.


▲ 청도에서 모자를 쓰고 양복을 입은 윤봉길 의사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 태극기 앞 윤봉길 의사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이후 독립운동에 뜻을 두어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을 남기고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는 김구를 만나 독립운동의 뜻을 밝히고 1932426한인애국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4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상하이 사변 전승행사 및 일왕 생일 축하식이 열린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이 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거사 당일 훙커우 공원으로 이동한 윤봉길 의사는 축하식이 시작되고 기미가요 합창이 끝날 무렵 단상으로 준비한 폭탄을 던졌다(훙커우 공원 투탄 의거).


이 투탄 의거로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테이지[河端貞次],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가 사망하고 주중 일본 총영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9사단장 우에다 켄키치[植田謙吉] 등이 중상을 입었다.


▲ 헌병대사령부에서 심문받을 당시 윤봉길 의사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현장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5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219일 가나자와[金沢] 미츠코지산[三小牛山] 육군작업장에서 순국했다.


그의 유해는 가나자와 공동묘지 관리사무소 앞 좁은 통로에 암장되었다가 광복 후 이봉창·백정기 의사 유해와 함께 고국으로 봉환되어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1968년 덕산에 충의사를 건립하고, 1988년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공원에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건립하여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고 그 뜻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1994, 의거가 일어난 루쉰공원 내에 기념관 매헌(梅軒)’을 건립하였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851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국가보훈처2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