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전쟁기념관은 2022년 4월의 호국인물로 ‘윤봉길 의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1908.6.21.~1932.12.19.)는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신문과 잡지 『개벽』 등을 통해 농촌계몽운동의 필요성과 민족의식, 식민 통치 저항정신을 함양한 윤 의사는 1929년 직접 야학을 열어 주민들에게 한글과 신학문을 가르쳤으며, 야학 교재인 『농민독본(農民讀本)』 제작, 농민조합 결성, 농촌진흥을 위한 월진회(月進會) 조직 등을 통해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다.
이후 독립운동에 뜻을 두어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을 남기고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는 김구를 만나 독립운동의 뜻을 밝히고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상하이 사변 전승행사 및 일왕 생일 축하식’이 열린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이 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거사 당일 훙커우 공원으로 이동한 윤봉길 의사는 축하식이 시작되고 기미가요 합창이 끝날 무렵 단상으로 준비한 폭탄을 던졌다(훙커우 공원 투탄 의거).
이 투탄 의거로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테이지[河端貞次],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가 사망하고 주중 일본 총영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9사단장 우에다 켄키치[植田謙吉] 등이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19일 가나자와[金沢] 미츠코지산[三小牛山] 육군작업장에서 순국했다.
그의 유해는 가나자와 공동묘지 관리사무소 앞 좁은 통로에 암장되었다가 광복 후 이봉창·백정기 의사 유해와 함께 고국으로 봉환되어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現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1968년 덕산에 충의사를 건립하고, 1988년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공원에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건립하여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고 그 뜻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1994년, 의거가 일어난 루쉰공원 내에 기념관 ‘매헌(梅軒)’을 건립하였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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