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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11 10: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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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합을 위해 헌신한 운암 김성숙 선생의 53주기 추모제12() 오전 11,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서 개최된다고 밝혔다.

 

이번 추모제는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 이하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진행되며,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 송영길 의원, 김홍걸 의원, 함세웅 신부 등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100여 명이 행사에 참석한 가운데 김성숙 선생 약사보고, 추모사, 추모공연, 현화 및 분향, 묘소참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추모식에는 식전행사로 김성숙 선생의 디지털 만화 인물(웹툰 캐릭터) 제작발표회가 있을 예정이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추모식 외에도 김성숙 선생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과 국제학술연구 발표회 개최, 운암로드 탐방 및 손수 제작물(UCC)공모전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기념사업회는 김성숙 선생의 애국애족정신이 국민들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운암김성숙기념관 건립과 함께 다양한 기념사업을 발굴하여 추진할 예정이다.

 

운암 김성숙 선생(1898.3.10.~1969.4.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1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됐다.

 

1919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선무산자동맹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했다. 선생은 1923년 초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승려 5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민국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여 사회주의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한인 유학생사회에서 이름을 떨쳤다.

 

19351212일 김성숙 선생과 두쥔훼이 부부는 상하이 문화계 구국운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생은 상하이 여성구국회에도 가입하여 중국 여성계의 항일구국운동에도 참여했다.

 

1944424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이시영·조성환·황학수·조완구·차리석·장건상·박찬익·조소앙·성주식·김붕준·유림·김원봉 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선생은 충칭 임정시기 한·중 연대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421011일 열린 중한문화협회 성립대회에서 이사로, 1017일에는 선전조 부주임으로, 1945315일에는 한국구제총회의 감사로 선임됐다.

 

광복 후에는 서울로 들어와 근로인민당 결성 등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412피우정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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