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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07 15: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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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은 20223월의 호국인물로 장인환 의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장인환(1876.3.10.~1930.5.22.) 의사는 1876310일 평안남도 평양군 대동면 선교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장 의사는 1906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상항(上港, 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창립에 참여하고, 1907년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 장인환 의사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 장인환 의사 / 사진출처=독립기념관


19083,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서 을사늑약 등을 체결하는데 일본을 도운 더럼 W.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이 미국으로 귀국하여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익하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들이 항의하며 발언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스티븐스는 사과는커녕 한국의 인민은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다.’라는 등의 망언을 늘어놓았다.

 

이에 장인환 의사는 스티븐스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1908323일 스티븐스이 워싱턴으로 이동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에 도착하자 장 의사는 거사를 준비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스티븐스 처단을 준비한 전명운 의사가 먼저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그러나 전명운 의사는 권총이 불발되자 스티븐스과 격투를 벌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장인환 의사는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스티븐스 저격 의거). 장인환 의사의 저격에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이틀 후 탄환제거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체포된 장인환 의사는 미국 법정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동포사회의 끈질긴 석방운동과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10년만인 19191월 가석방되었다.

 

▲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가 주최한 ‘장인환 의사 석방 축하대회’에서 악수하고 있는 전명운·장인환 의사. 오른쪽이 전명운 의사, 왼쪽이 장인환 의사이다. / 사진출처=독립기념관


가석방 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부회장, 민립대학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주히 활동하였다. 1927년 평양으로 귀국하여 고아원을 운영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귀환하였다. 장 의사는 1930522일 샌프란시스코 병원에서 지병을 치료하던 중 타계하였다.

 

장인환 의사의 유해는 동포사회장으로 샌프란시스코 근교 사이프러스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75년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장인환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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