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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12 15: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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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전쟁기념관은 20221월의 호국인물로이봉창 의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이봉창(1901.08.10.~1932.10.10.) 의사는 1901 8 10일 한성부 용산(현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14살 때부터 용산역 역부, 오사카 가스회사 인부 등으로 일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민족차별을 받았다.

 

▲ 이봉창 의사 집터 표석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1928 11 10일 일왕 히로히토의 즉위식을 관람하기 위해 교토로 갔다가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11일간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이를 계기로 항일의식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결심을 하였다. 이후 상하이에 독립운동 단체가 있는 이야기를 듣고 1930 12월 상하이로 갔다.

 

1931 1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안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는 일왕을 격살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1931 12 13일 안공근의 집에서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제1호 단원이 되었으며 준비한 폭탄을 받아 12 17일 상하이를 떠나 고베와 오사카를 거쳐 도쿄로 들어갔다.


▲ 등록문화재 제745-1호 이봉창 의사 선서문 / 자료출처=국립중앙박물관


▲ 등록문화재 제745-2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 봉투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 / 자료출처=국립중앙박물관


1932 1 8일 요요기 연병장에서 일왕이 참석하는 관병식이 거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거사 당일 일왕이 환궁하는 길을 노리고, 도쿄 경시청 정문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이봉창 의사는 두 대의 마차가 지나가자 두 번째 마차가 일왕이 타고 있다고 판단하여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두 번째 마차 뒤쪽, 마부가 서 있을 수 있는 받침대에 떨어지며 터졌지만, 두 번째 마차가 일왕이 탄 마차가 아닌 일왕을 수행하는 궁내대신의 마차였기에 일왕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했다.

 

▲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을 던진 곳 / 사진출처=국사편찬위원회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봉창 의사는 9 30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32 10 10일 도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유해는 사이타이현 우라와시 우라와형무소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광복 후 윤봉길, 백정기 의사 유해와 함께 고국으로 봉안되어 1946 7 6일 효창원 삼의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이봉창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2020년에는 용산구 효창동에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을 건립하여 이봉창 의사의 애국정신을 추모, 계승하고 있다.

 

▲ 이봉창 어록비 / 사진출처=독립기념관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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