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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2-18 16: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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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일제에 폭탄을 투척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제88주기 추모식19() 오전 11,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삼 의사 묘역)에서 열린다.

 

18일 보훈처에 따르면 추모식은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명노승) 주관으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유족이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진행된다.

 

이날 추모식은 약전 봉독 및 어록 낭, 추모사헌화·분향, 추모가,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거행되며, 행사의 진행 과정은 유튜브(https://youtu.be/0NIK8IKIEq4)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 2018년 4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 장면 / 사진촬영=오재욱 기자


윤봉길 의사는 19086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5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을 세워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이듬해에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윤 의사는 1931년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조국독립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중 마침내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윤 의사는 의거 3일 전인 426일에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마침내 19324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점령 전승 경축식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렸다. 윤 의사는 오전 1140분경에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했다.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하여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 단장은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 시게미쓰 공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이 의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중국의 지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윤 의사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되고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2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25세 나이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 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윤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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