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11-16 01:54:24
  • 수정 2020-11-16 02:24:39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미국 의원단 방한을 기회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최종현(崔鍾泫)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208월 함남 원산에서 미국 의원단의 방한소식을 접하고 동년 9월 장춘교(長春橋) 부근에서 동지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경찰관 주재소와 우편소, 일본인 상점 등을 공격하다 체포되어 징역 26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 「판결문」(경성복심법원 : 1921. 2. 23.). 밑줄 친 부분에 따르면, 최종현 선생은 조선독립을 희망하여 1920년 9월 23일 저녁 원산부 일대에서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불러 안녕질서를 방해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주목할 것은 원산의 만세시위가 선생이 참여한 비밀결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선생 등은 만세시위가 있기 한달 전 원산에서 동지 김종한(金宗翰)을 단장으로 일심단(一心團)을 조직하고 대대적으로 만세운동을 일으켜 독립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어 922일 밤 선생은 동지들을 자택으로 불러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이튿날 원산시내에서 이른바 불온창가를 선창하며 수 백명이 참여하는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 밑줄 친 기록에 따르면, 최종현 선생이 1921년 2월 23일 징역 2년 6월을 받고 복역하던 중 1922년 11월 27일 가출옥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 「독립신문」, 1921년 1월 21일자 기사. 최종현 선생이 1920년 원산지역 독립만세사건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은 사실을 보도하였다.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선생에 대한 포상은 일제가 자신들의 조선지배가 동양평화를 위해 필요하고 조선인이 승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의원단을 초청하자 이에 맞서 절대독립의 의지를 내외에 천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725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유니세프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