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50세가 넘은 나이에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유중제(柳重悌) 선생께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4월 충남 천안군에서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태(笞) 90도를 받고 고초를 치른 뒤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듬해 2월 작고했다.
천안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 병천시장에 모인 3천여 군중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였다. 당초 천안의 만세운동은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과 동면(東面)의 두 방면으로 추진되었는데, 선생은 동면 용두리 출신으로 조인원(趙仁元)(90, 애족장) 선생의 아들 조병호(趙炳鎬)(90, 애족장), 유관순 열사의 부친 유중권(柳重權)(91, 애국장), 숙부 유중무(柳重武)(90, 애족장) 등이 주도한 동면 방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동면계의 만세운동은 유관순이 이화학당 재학 중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시위에 참가했다가 독립선언서를 소지하고 내려와 동리 어른인 조인원, 아버지 유중권 등에게 보이고 서울의 상황을 알리면서 시작되었다.
병천시장 만세시위는 규모만큼이나 양상도 격렬하여 사망자만 19명에 달했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한 향토사학자가 천안지역 시위참가자 26명의 「범죄인명부」를 발굴, 확인하고 포상을 신청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태형을 받은 12명 가운데 9명은 유관순 열사가 살았던 용두리 주민인 바, 이 가운데 8명이 태형 최고형인 90대를 받았다고 한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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