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10-28 14:08:07
  • 수정 2020-10-28 14:08:47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일제하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린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제100주년 기념식28일 오전 10, 부산상공회의소(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에 따르면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이경재) 주관으로 열린 행사는 박삼득 보훈처장을 비롯해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김원웅 광복회장 그리고 출신학교 재학생 및 기념사업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봉독, 의거 이유 낭독, 기념식사, 기념사, 만세삼창, 폐식 순으로 진행됐다.


▲ 부산경찰서 폭파 거사 전날인 1920년 9월 13일 동기 최천택(오른쪽)과 촬영한 박재혁 의사(왼쪽) 기념사진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박재혁 의사는 부산 사람으로 부산진보통학교(釜山鎭普通學校)와 부산공립상업학교(釜山公立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부산와사전기회사 전차차장으로 있었고 왜관(倭館)에서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던 중 19176월 주인으로부터 자본금 700원을 얻어 상해로 가서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186월 귀국했다.


박 의사는 보통학교와 상업학교 동창인 동지 최천택(崔天澤)에게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투쟁할 것을 말하고 기회를 노리던 중, 1919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상해로 가서 중국 각지와 싱가폴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는 한편 여러 독립투사들과 교제하였다.


19203월에 귀국하였다가 8월에 상해로 가서 김원봉을 만나 군자금 3백원을 받아 부산경찰서를 파괴하고 그 서장을 사살할 것을 계획했다. 동년 9월 상순 폭탄을 휴대하고 상해를 떠나 동월 6일 부산에 상륙했다.


▲ 박재혁 의사 의거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 당시 부산일보 자료」(1920.9.20.)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박 의사는 14일 오후 230분에 고서 보따리로 위장한 폭탄을 등에 지고 경찰서로 서장을 찾아 서장과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몇 마디 환담을 한 후 고서를 꺼내는 척하면서 폭탄을 꺼내들고 서장을 유창한 일본말로 꾸짖고, 폭탄을 던져 폭발시키니 서장은 부상을 당하고 그도 중상을 입은 채 붙잡혔다.


박 의사는 모진 악형 끝에 기소되어 192011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 언도를 받고 공소하여 19212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자 다시 상고하여 1921331일 경성고등법원에서 다시 사형을 언도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혹독한 고문과 폭탄의 상처로 몹시 신음하다가 폐병까지 생겨 고통이 심했고, “왜적(倭賊)의 손에 욕보지 않고 내손으로 죽자하고 단식하다가 형 집행 전에 옥사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721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국가보훈처1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