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08-13 11:00:38
  • 수정 2020-08-13 11:45:56
기사수정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부친과 함께 옥고를 치른 김희인(金熙仁)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천도교도이기도 한 선생은 19193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서 수십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초 화천읍 만세시위는 부친인 김창희(金昌羲) 선생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다. 손병희(孫秉熙) 등의 조선독립선언 계획에 찬동한 김창희는 화천읍 장날인 1919323일을 기해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깃발을 만들어 각 리()에도 연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 김희인 선생의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 7. 7). 밑줄 친 부분에 따르면, 1919년 3월 23일 강원도 화천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 군중과 함께 화천 읍내로 행진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 자료제공=국가보훈처


▲ 김희인 선생의 「형사공소사건부」. 1,2,3심 재판 결과를 간략히 보여주는 형사기록이다. 이에 따르면, 김희인 선생은 1심 재판에서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8월을 받았고 1920년 4월 징역 7월 8일로 감형되었다. / 자료제공=국가보훈처


이 계획에 따라 선생 등은 거사 당일 조선 독립국 만세”, “화천면민단 대표자 김창희, 이은규 외 1이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화천읍내를 행진하였다. 선생에 대해서는 그 동안 심사에서 독립운동 자료상의 김희인(金熙仁)과 호적상의 이름이 상이하여 포상이 보류되었으나 선산김씨 족보(1960) 등을 보완하여 검토한 결과 동일인임이 확인되어 포상이 이루어졌다.


화천군 화천읍 만세운동을 주도한 공로로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부친에 이어, 차남인 선생께도 애족장이 추서됨으로써 영예로운 부자(父子) 독립유공자 가문이 탄생한 사례이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648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유니세프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