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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7-30 22: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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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이 20208월 호국인물로 김홍일(金弘壹) 육군 중장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30일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고() 김홍일 육군중장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8923,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계몽주의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던 오산학교 졸업 후, 황해도 신천의 경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지만, 오산학교 출신자들이 항일운동 혐의로 탄압을 당하자 이를 계기로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했다.

 

1920, 구이저우[貴州]군 소위로 임관 후 무장투쟁이 치열하던 연해주 대한의용군사회에서 근무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소령이 된 후, 1927년 용담(龍潭)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1931년에는 상하이 병기창 주임으로서 이봉창·윤봉길에게 폭탄을 제공해 임시정부의 의열 투쟁을 지원했다.

 

1938, 중일전쟁 만가령 전투의 승리를 이끌어 외국인으로서 드물게 국민혁명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 전쟁기념관이 2020년 8월 호국인물로 ‘김홍일(金弘壹) 육군 중장’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 사진제공=전쟁기념관


그는 임시정부의 권유로, 1945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하여 광복군의 육성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직후, 귀국하여 육군준장으로 특별 임관하였고, 이듬해 소장으로 진급했다.

 

6·25전쟁이 발발 당시 육군참모학교장이었던 그는 628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서울 북방에서 분산 철수하는 국군 부대를 수습하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의 지휘를 통해 국군은 한강에서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였고,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고 첫 지상군을 한반도에 파견하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했다.

 

74일에는 제1군단장에 취임하여 중부전선의 지연전과 낙동강선 방어 작전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종합학교장으로서 초급간부 양성에 전념하던 그는 19513월 중장으로 예편했다.

 

그리고 대만대사,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 광복회장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8088, 향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정부는 군인으로서 그의 공을 기려 1951726일 태극무공훈장을, 독립운동 유공으로서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했다.

 

그가 타계한 직후인 1980811일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로를 드높였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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