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07-30 22:31:05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공동으로 강혜원 선생’2020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에 따르면 강혜원(1885.11.21.~1982.5.31.) 선생은 18851121일 평양에서 출생하였고,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 황마리아를 따라 19055월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삯바느질을 하여 학비를 벌었으며 19134월 어머니와 함께 호놀룰루 대한인부인회를 조직하면서 한인부인운동을 시작했다.

 

19193월 올케 강원신을 비롯하여 한성선, 한영숙, 한신애, 김경애 등과 함께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를 조직하고 총무로 선임되었다. 신한부인회는 동포들의 자유정신 고취, 한국 후원, 대한인국민회에 의무금을 납부하는 한인여성단체였다.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부인회를 통합하여 19198월에 대한여자애국단을 창립하고 선생은 총단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202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통해 군자금 500달러를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 ‘강혜원 선생’ 관련 자료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1921428일 대한여자애국단 총부 위원들과 함께 여자애국단 경고서를 발표하고 단비(團費) 수납을 촉구했다. 선생은 시간당 15센트씩 벌면서도 매월 3달러씩 단비(團費)를 냈으며, 이렇게 어렵게 모은 돈을 선생을 비롯한 대한여자애국단 단원들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후원금을 송금했다.

 

이후에도 부인회를 통해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했으며 19401, 19412, 194112월 대한여자애국단 총부 단장으로 3번이나 선임되어 3년간 활동했다.

 

이처럼 선생은 임시정부와 대한인국민회의 재정을 적극 지원했고, 미주 내 한인 동포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운동을 실시하는 등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해방 이후에도 재미한인전후구제회(在美韓人戰後救濟會)와 함께 본국에 구제품을 보내기도 했으며, 1982531일 별세하여 로스앤젤레스 로즈데일(Rosedale) 공동묘지에 계시다가 2016년도에 남편과 함께 유해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한편, 선생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어머니 황마리아(1865~1937)는 하와이 한인사회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2017년 애족장에, 남편 김성권(1875~1960)은 하와이 한인 한인단체인 한인합성협회, 흥사단 등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2002년 애족장에 추서되었으며, 동생 강영승(1888~1987)은 미주한인사회 최초로 법학박사 학위을 취득한 인물로 대한인국민회, 신한민보 등에서 민족운동에 헌신 2016년 애국장에, 올케 강원신(1887~1977)은 선생과 함께 미주 한인사회 부인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631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국가보훈처2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