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03-31 21:31:48
  • 수정 2020-03-31 21:34:31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오광선·정현숙 선생 부부2020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오광선(1896.5.14~1967.5.3) 선생은 1896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13년 삼악학교를 졸업한 후 이웃 마을 출신 정현숙(이명 정정산) 여사와 결혼했다.


독립운동에 큰 뜻을 품은 선생은 1914년 서울로 올라가 종로에 있는 상동(尙洞)청년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총독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재정난으로 1915년 문을 닫게 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동흥(東興)학교 군사교관과 체육교사로 재직한 후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헌신하였다.


192012월 대한독립군단(총재 서일, 부총재 홍범도·김좌진·조성환, 부대원 약 35백여 명) 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307월 이청천과 홍진 등이 중국 위하현에 결성한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하였고, 19342월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하였다.


이후 김구 선생의 지시로 1936년 북경으로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11월 귀국하여 대한국군준비위원회’,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에 참여하였으며, 194812월 육사 8기로 입교하여 이듬해 육군대령으로 임관하였고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 [오광선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 [정현숙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또한 정현숙(1900.3.13~1992.8.1) 여사는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화전을 일구며,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생활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군의 뒷바라지에 헌신하여 만주의 어머니로 불리었다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임정 활동에 참여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부부의 두 딸 오희영, 오희옥 선생(생존 애국지사) 역시 1939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담하여 선전활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광복군에 입대해 초모(招募)공작 등에 활약하였으며 사위(오희영의 남편 신송식)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 가문이다.


정부는 두 분의 공훈을 기리어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수여하였고, 정현숙 선생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624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국가보훈처2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