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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3-31 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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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이 20204월 호국인물로 나창준 공군 소령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나창준 공군 소령은 1928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하여 19443월 일본 다치아라이(太刀洗)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했다. 19489월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이듬해 10월 공군 창설과 함께 L-4연락기 조종사로 근무했다.

 

▲ [故 나창준 공군 소령 / 사진제공=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이 2020년 4월 호국인물로 ‘나창준 공군 소령’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950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락기를 몰고 전·후방 정찰임무와 공비토벌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628일에는 동료 조종사 3명과 함께 여의도비행장에서 미처 철수하지 못한 미군사고문단 소속 L-5 연락기 2대를 적의 대공포 사격을 뚫고 수원기지로 무사히 귀환시켰다. 195010월 소위로 현지 임관한 후 19513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같은해 8F-51D 무스탕 전투기 기종 전환훈련을 받은 후 제1전투비행단 강릉전진기지에 배속되었다. 이후 우리 공군 최초의 단독 출격작전에도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원산, 평양 등 적 후방 지역 깊숙이 출격하여 수많은 적 전차와 진지 그리고 보급품 집적소와 군수공장 등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5245일 그는 평양 남쪽 진남포 지역의 적 보급로 차단과 군수공장 폭격 명령을 받고 4대의 F-51D 무스탕 전투기 편대를 이끌고 강릉기지에서 출격했다. 철교와 군사시설을 폭파한 후 진남포 군수품 생산공장을 공격했으나 적의 대공포에 피탄되었다. 그는 항공기가 비행불능 상태에 처하자 적 진지로 돌진, 자폭함으로써 25세의 나이로 장렬히 산화했다.

 

() 나창준 소령은 6·25전쟁 기간 중 F-51D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로 총 57회의 출격을 기록했다. 그 결과 지리산지역 공비소탕작전과 송림제철소 폭격작전 등 전쟁 중 우리 공군의 주요 작전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그의 공적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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