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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3-03 15: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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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이 20203월 호국인물로 박노규 육군준장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박노규 육군준장은 1918314일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에서 출생했다. 1946년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2기로 입교하여 같은 해 11월 육군참위(소위)로 임관하였다. 6·25전쟁 발발 전에는 제4연대 작전주임장교로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압작전에 참가했다.

 

▲ [박노규 육군준장 / 사진제공=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이 2020년 3월 호국인물로 ‘박노규 육군준장’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950714, 그는 국군 제6사단 제2연대 제1대대장으로서 소백산맥의 관문인 문경 이화령 일대를 방어했다. 연대는 이화령을 돌파하려는 북한군 제1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은 제2·3대대가 중과부적으로 진지를 이탈하자 그가 지휘하는 제1대대만이 방어진지를 고수하게 되었다. 그는 치열한 백병전으로 북한군을 격퇴하고, 이화령 북방의 연풍 일대까지 반격을 가하는 데 성공했다. 1대대의 반격에 힘입어 연대는 이화령전투에서 800여 명의 적을 사살하여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의 사기를 고양시킬 수 있었다. 또한 상주-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2군단의 계획을 지연시켜 낙동강 방어선의 구축에도 크게 기여했다.

 

같은 해 11월 대령으로 진급한 그는 제2사단 제31연대장으로서 태백산지구 일대의 게릴라 토벌작전을 지휘했다. 당시 태백산지구에는 북한군 제10사단의 패잔병과 함께 남파 유격대가 국군의 후방을 교란시키고 있었다. 이듬해 195134, 영남 일대의 병참선을 경비하던 제31연대는 일월산지구를 돌파하려는 북한군 1,500여 명의 기습을 받았다. 이때 그는 연대장의 직책으로 부대를 진두지휘하며 적의 공격을 격멸하던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전공과 헌신을 기려 1951427일 준장으로의 특진과 함께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2)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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