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01-06 16:57:23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이 20201월 호국인물로 이일영 중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고() 이일영 중위(추서 계급)1928826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433월 예안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53월 구마가야(熊谷) 육군비행학교 조종과정을 졸업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육군 항공부대가 창설되자 같은 해 9월 입대하여 육군항공대에서 근무했다.

 

▲ [이일영 중위 / 사진제공=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이 2020년 1월 호국인물로 ‘이일영 중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949년 공군 창설과 함께 L-4 연락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적진 정찰 및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며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기여했다. 특히 19509월에는 경북 영천 하양동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적군 200여 명의 위치 정보를 아군에게 전달하여 섬멸케 하였다. 이듬해 9F-51D 무스탕 전투기 기종 전환훈련을 받은 후 공군 소위로 현지 임관 한 그는 제1전투비행단 강릉전진기지에 배속되었다. 이후 우리 공군 최초의 단독 출격작전에도 참여하여 동부전선 적 후방 지역의 보급 및 병력 수송 차단과 지리산지역 공비 소탕작전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195219일 그는 강원도 원산과 회양 지역의 적 대공포 진지 파괴와 보급로 차단의 명령을 받고 김두만 대위, 김금성 중위와 함께 강릉기지에서 출격했다. 적의 주 보급선인 경원선 철도를 폭격하고 대공포 진지를 공격했으나 회양 남쪽 창도리(昌道里) 지역에서 안타깝게도 적의 대공포에 피탄되었다. 그는 항공기가 비행불능상태에 처하자 적 진지로 돌진, 자폭함으로써 25세의 나이로 장렬히 산화했다.

 

() 이일영 중위는 6·25전쟁 기간 중 F-51D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로 총 44회의 출격을 기록했다. 그 결과 100여 개소의 철도와 도로 차단, 20여 개소의 대공포와 포진지 파괴, 적군 60여 명 사살 등의 전과를 올렸다. 정부는 이러한 그의 공적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24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609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국가보훈처2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