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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1-07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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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이 201911월 호국인물로 이광악 장군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이광악(李光岳) 조선 장군(1557~1608)은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진지(鎭之)이다.

 

장군은 1557(명종 12), 충북 충주 유동리에서 아버지 정선군수 이호약과 어머니 경주김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가 크고 맑아서 대인의 풍모가 있었다. 학문과 수신에 힘쓰기보다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것을 즐겨 무관으로 출사하는 데 그 뜻을 두었다.

 

1584(선조 17) 무과 별시에서 을과 16위로 급제하여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연일(延日)현감·이성(利城)현감·경주(慶州)판관을 거쳐 곤양(昆陽)군수에 임명되었다.

 

▲ [이광악 장군 / 사진제공=전쟁기념관]

 

159210월 초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제해권을 상실한 왜군은 남해안 지방의 거점 확보가 어려워지자 불리해진 전세 회복을 위해 대대적으로 진주성을 공격해왔다. 당시 곤양군수로 재직하고 있던 이광악 장군은 초유사 김성일의 명령으로 병력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들어가 진주목사 김시민과 함께 적에 맞섰다. 왜군의 선봉이 진주성의 동쪽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치열한 전투 속에서 진주목사 김시민이 부상을 입자 그를 대신하여 전투를 진두지휘했다.

 

이때 돌진해 온 적장을 이광악 장군이 화살로 쏘아 죽이니 전의를 잃은 적군은 물러나기 시작했고, 조선군은 사기가 충천하여 퇴각하는 적을 물리쳐 크게 승리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전투에서 순국한 이복남을 대신하여 전라병사에 임명되어 순천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와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순천·광양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이어 순천 예교성전투에서는 조·명연합군의 선봉군으로 활약하였다. 이광악 장군은 임진왜란 3대첩에 빛나는 진주성전투 승리의 주역으로서 그 공을 인정받아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이후 수원(水原)부사·경기방어사·영흥(永興)부사를 거쳐 1606(선조 39)에는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장군은 160852세 나이로 별세했으며, 1711(숙종 37) 충장(忠壯)의 시호를 받았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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