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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0-17 16: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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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김희자 기자경남 함안군은 1017일 군수실에서 조근제 함안군수, 기증자인 안지호 지사 증손 안희주 씨가 참석한 가운데 함안 대표 항일독립운동가 안지호 지사의 건국공로훈장, 건국공로훈장증, 포창완의문의 기증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함안군에 따르면, 기증받은 건국공로훈장은 1963년 추서된 단장(單章)으로 상훈법이 개정됨에 따라 3등급인 독립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기증 자료에 포함된 포창완의문은 훈장 추서 이전인 1925년 공부자 성적도 속수오륜행실 중간 연원유림향약본소에서 안 지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발급한 문건이다.


조근제 군수는 우리 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안지호 지사의 귀중한 자료를 기증해주신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후손들이 안 지사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잘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기증자 안희주 씨는 함안에서 항일운동을 하셨던 증조부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증을 결정하게 되었다. 자료들이 후세에 온전히 전해질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고 답했다

 

군 관계자는 안 지사는 우리 군 대표 독립운동가로서 그 분의 자료는 지역사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전시 및 활용방안을 수립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경남 함안군은 10월 17일 군수실에서 조근제 함안군수, 기증자인 안지호 지사 증손 안희주 씨가 참석한 가운데 함안 대표 항일독립운동가 안지호 지사의 건국공로훈장, 건국공로훈장증, 포창완의문의 기증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 사진제공=함안군청]


안지호 지사는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통감부와 일본 정부에 논책문(論責文)을 보냈다가 몇차례 구금되었다. 1910년 조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합병되자 만국공관(萬國公館)에 호소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데라우치 총독에게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글을 보내었다가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징역 3월에 2년간 집행유예를 받기도 하였다

 

19193월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당시 한문교사로 있던 그는 함안읍 의거를 이끈 함안군 내 청년유지들의 배후 고문 역할을 했다. 319일 함안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하는 한편 이 같은 계획을 인근지역 주민에게 연락했다. 안 지사는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부산감옥 마산분원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1년 옥중에서 순국했다

 

한편, 함안읍 의거는 319일 함안읍 장날 일어난 의거로 정오부터 3천 여명의 대대적인 시위군중이 장터를 출발하여 경찰주재소·군청·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를 차례로 시위행진하며 건물을 파괴하고, 도처에서 일본 군경과 충돌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함안군수를 앞세워 만세운동에 앞장설 것을 강요했고,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마산경찰서 기타무라 서장에게 만세를 부른 사실증명서를 작성하여 날인할 것을 협박하기도 했다. 만세운동은 공약삼장에 명시된 평화적 시위를 고려하지 않고 미리 계획하여 나라 잃은 울분을 표출한 격렬한 시위였다. 이는 대부분의 폭력시위가 일제의 과잉진압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과 차이가 있다.


[김희자 기자 khj-pizz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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