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이 2019년 7월의 현충인물로 ‘강태조 육군일병’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따르면, 강태조 육군일병은 1929년 6월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강 일병은 1948년 육군에 입대해 복무 중인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조국의 미래를 위해 본인과 가족의 미래보다 조국을,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삶을 선택했다.
6·25전쟁 당시 강태조 일병이 속한 육군 7사단 8연대 등 국군은 북한군과 인제-원통 도로와 주변 저지대를 통제할 수 있는 한석산을 확보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 없는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마침내 국군의 승리로 동부전선 방어선을 지켜낼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1951년 4월 24일 강태조 일병이 이 전투에서 산화하며 끝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 평안하게 계시오. 까마귀 우는 곳에 저 가겠소. 삼팔선 넘어 백두산 상봉에 태극기 날리며 죽어서 뼛골이나 돌아오리다. 아내여! 굳세게 새 세상사시오. 우리 다시 만날 백년의 언약. 지금은 이별가를 합창하고 가오니 나에게는 중대한 책임이 있소” 강 일병이 아내에게 남겨준 ‘이별가’(전문)에서 그의 우국충정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강 일병은 1949년 여름휴가를 나와 백일이 갓 지난 딸(강춘자님)을 한 번 안아보고 복귀한 뒤 ‘이별가’ 노래 가사처럼 강산이 바뀌고도 한참 뒤인 2012년 61년 만에 뼈골이 돼서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2009년 5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유해가 발굴됐으나 신원 확인에 필요한 단서가 없어 유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6월 아버지를 찾아 나선 자녀 강춘자님이 유전자를 제공하면서 마침내 유족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를 찾게 된 강춘자님은 "남겨진 한 장의 사진으로만 뵙던 아버지가 돌아온다니 꿈만 같다"며 "입대당시 불러주신 아버지의 노래 가사를 평생 잊지 못하고 내게 들려준 어머니의 한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한민국정부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강태조 일병을 2011년 12월 13일 6·25전사자 발굴유해의 합동안장식을 거행한 후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제3묘역에 안장하여 그 공로를 기리고 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