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비는 대구시 중구 태평로 141, 대구콘서트하우스 오른쪽 끝 앞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북후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곳으로, 1907년 2월 21일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세상에 알리는 대구 군민대회가 열린 역사적인 장소이다.
형상은 높이 420㎝, 가로 360㎝, 세로 360㎝의 규모로 남녀노소 온 백성이 엽전을 모아 의연(義捐)하는 모습을 담았다.
기념비는 1997년 2월 21일, 대구상공회의소가 창립 90주년 기념사업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대구민의소(지금의 대구상공회의소) 서상동, 김광제 회장 등 선각자들의 높은 뜻을 받들고자 건립했다.
찬사
겨레 바탕 뛰어나나 갈기갈기 갈라지자
힘 모자라 억울하고 가난하여 서럽더라
이웃이라 도우는 척 덮어씌운 빚 덩어리
벗어 보자 횃불 든 곳 우리 대구 여기더라
삼천리 방방 곡곡 남녀 노소 가슴가슴
그 불길 활활 타서 광복으로 이어졌네
국채보상기념비
1907년 1월29일 김광제, 서상돈 등이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하였으며, 동년 2월21일 대구민의소(현 대구상공회의소 전신)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 모금을 위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여 국채보상취지서를 낭독하였는데, 국채보상기념비는 이 뜻을 기리고자 건립되었다.
대구 북후정에서 군민대회가 개최되고 국채보상발기문과 국채보상취지서가 신문에 게재되자 이 운동은 실로 신분과 성별과 직업과 지역을 초월한 거국적 민족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가게 되고, 재외동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의연금의 출연은 말할 것도 없고, 단연·패물의연·땔감나무기부·식생활절약 등을 통해 외채를 갚는 경제주권회복운동이었다. 또한 일반평민이 주동이 된 한국최초의 시민운동이었으며,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한국최초의 여성운동이고, 나아가 전국민적 시민기부운동이기도 하였다(영상촬영 / 편집 : 오재욱 기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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