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12-19 13:40:52
기사수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6주기 추모식1219일 오전 11, 서울시 용산구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다.

 

추모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헌화·분향, 추모가, 윤봉길 의사의 노래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윤봉길 의사(1908. 6. 21.1932. 12. 19.)1919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했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했고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 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해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했다.

 

1932429,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을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의사의 거사는 우리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크게 기여했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1118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19일 오전 740분 가나자와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5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bctv.net/news/view.php?idx=361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국가보훈처1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