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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1-26 16: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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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박정미 기자인천시는 오는 1127일 작은 전시실에서 백범 김구의 인천 감옥 탈옥 120주년을 기념해 청년 김창수, 인천에서 김구가 되다란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김구의 호는 백범이고 처음 이름은 창암이었다. 백범은 19세 때 김창수로 바꾸었다가 37세에 김구로 개명했다.


21세였던 김창수(백범 김구)는 1896년 일본인 스치다(土田讓良)를 명성황후를 살해한 자라 여겨 살해한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감리서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창수(백범 김구)는 사형수 신분의 미결수로 옥중에 있다가 강화사람 김주경의 권고로 18983월 인천감옥을 탈옥했다. 그는 감옥에서 독서와 사색, 그리고 신학문을 배워 교육가, 독립운동가로 성장했다.


1912년, 인천의 독립운동가인 유안무는 김창수를 김구라고 개명하게 했다. 강화인 김주경은 그의 석방을 위해 전 재산을 사용했다.


국권 피탈 이후 백범은 1910년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있다가 1913년에 두 번째로 인천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때 축항공사에 동원되어 갖은 고생을 했다.


김구라고 개명한 덕분에 두 번째 옥살이에서 백범은 자신이 김창수라는 것을 숨길 수 있었다. 백범에게 닥친 운명의 순간에 인천 사람들이 백범을 도왔고 생명을 구해 주었다. 백범 김구는 인천인들에 대한 의리를 가슴에 간직하고 백범일지에 이를 자세히 기록했다. 그리고 귀국 후 인천을 방문해 고마움을 표했다. 그의 평생의 눈물겨운 독립운동에는 인천인의 피와 눈물과 땀의 희생정신이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1127일부터 내년 228일까지이며, 그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통해 인천과의 인연을 살펴보고자 마련했다.


[박정미 기자 pjm@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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