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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6-30 10:09:51
  • 수정 2018-07-04 10: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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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7월의 독립운동가 연미당(延薇堂)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연미당(延薇堂) 선생을 2018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연미당(延薇堂) 선생을 2018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선생(1908.7.15.1981.1.1.)19087월에 태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립학교인 인성학교(人成學校)를 졸업하고 19277월 청년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결혼했다.


부친 연병환은 북간도 청년들이 191933일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배후에서 이를 지원하다 체포되어 2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선생은 남편 엄항섭을 내조하면서 자녀들의 교육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192711월 상해에서 결성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기 시작한 선생은 상해여자청년동맹에서도 활동했다.


1932429일 윤봉길의사가 상하이 홍구공원 의거 이후 선생은 가족을 이끌고 상하이를 탈출했다.


선생은 임시정부가 중국 가흥 등지로 이동할 때 자신도 돌보기 힘든 상황에서 가흥에서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이동휘와 장사 남목청에서 피습당한 김구를 간호하는 등 노() 독립운동가들을 병간호했다.


1936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재건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했고 1940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하자 항일과 독립을 위해 여성들을 결집하고자 한국혁명여성창립동맹을 발족하고 애국부인회를 재건했다. 특히, 선생은 중경 방송국에서 일본군 소속 한인 사병들을 광복군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반일선전 활동을 전개해 갔다.


해방이후 중국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늦은 194663일 한국으로 환국한 선생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납북되어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해와 중풍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냈던 선생은 198111일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연미당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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