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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02 16: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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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이 서울시 서초구 매헌기념관에서 열였습니다.


기념식은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전봉독, 기념사, 유시봉독 등의 순으로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렸습니다.


[황길수 /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

상해 의거는 대한겨레의 꺼져가던 민족정신과 독립의지를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에 신음하던 세계의 많은 피지배 약소국들을 고무시킨 세계사적인 사건으로써 정의자유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세계만방에 떨치셨습니다.”


한편, 지난 28일에는 중국 상해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는 추모다례가 개최됐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429,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에서 일본 수뇌부를 폭사시켜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취재/촬영/편집 : 오재욱 기자).


▲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 / 사진촬영=중앙보훈방송 오재욱 기자] 역사어린이 합창단이 4월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에서 `매헌윤봉길`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비장한 글귀를 남기고 집을 나선 윤봉길 의사.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윤봉길 의사(1908. 6. 21.1932. 12. 19.)1919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해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해 농민의 자녀를 교육했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과 더불어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 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했다.


의사는 중국으로 망명해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했다. 1932429,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을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켜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크게 기여했다.


윤봉길 의사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체포돼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1118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19일 오전 740분 가나자와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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