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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14 12: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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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암 김성숙 선생 모습 / 사진출처=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운암 김성숙 선생 49주기 추모재(追慕齋)가 4월 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김성숙 선생은 승려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생을 항일 투쟁에 헌신한 독립운동가다.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운암 김성숙 선생 49주기 추모재(追慕齋)4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김성숙 선생은 승려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생을 항일 투쟁에 헌신한 독립운동가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행사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유족, 광복회원, 각계 인사,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사 보고, 내빈 추모사, 추모가,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운암 김성숙 선생(1898. 3. 10.1969. 4. 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해 1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9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전국을 다니며 조선무산자동맹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1923년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고려유학생회창일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열단활동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으며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과 내무차장으로도 활동했다. 1943년에는 조소앙, 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임시정부 선전위원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선생은 광복 후 서울로 들어와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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