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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12 13: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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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아기호랑이] 외국인 독립운동가 ‘제16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 기념식’이 4월 12일 서울대학교 스코필드홀에서 열렸다.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외국인 독립운동가 16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 기념식412일 서울대학교 스코필드홀에서 열렸다.

 

추모 기념식은 서울대학교가 주최하고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주관한 가운데 에릭 월쉬(Eric Walsh) 주한캐나다대사,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각계인사, 회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石虎弼), 1889.3.15.1970.4.12.) 박사는 영국에서 출생했으나 1907년 캐나다로 이주해 1911년 토론토 대학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14년부터 모교에서 세균학 강사로 취임했다.

 

박사는 1916년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로서 내한하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前身) 세균학 강의를 맡게 되었고 1919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독립운동의 실상을 기록했다.

 

1919415일에 일어난 제암리 학살 사건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기록을 남겼으며, 한국 선교사 대표로 극동지구 선교사 전체회의에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영자신문 서울프레스가 일제의 정책을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등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1920년 캐나다로 귀국한 박사는, 캐나다와 미국 각지에서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일제의 만행을 비판했다.

 

박사는 19588월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병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보육원을 후원하고 직업학교를 돕는 등 사회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418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장례는 416일 광복회 주최의 사회장으로 거행되어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96)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박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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