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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05 19:03:00
  • 수정 2018-03-23 13: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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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목원고모호수공원 광장 모습. ⓒ오재욱 기자


▲ 김종삼 시비(詩碑). ⓒ오재욱 기자


▲ 김종삼 시비(詩碑) 소개글. ⓒ오재욱 기자


경기도 포천 국립광릉수목원 인근 소흘읍 고모리에 고모저수지를 둘러싸고 수목원 고모 호수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호수공원 광장 한편 울타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종삼의 시그리고 그의 시비(詩碑).


한동안 서서 읽고 또 읽었다. 거기서 김종삼과 그의 시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장편2


조선 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川邊 錢 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짜리 두개를 보였다


▲ 김종삼 시, 장편‧2. ⓒ오재욱 기자


김종삼(1921~1984)은 황해도 은율(殷栗)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양 광성보통학교를 나와 숭실중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1938년 일본 도요시마상업학교에 편입해 졸업한다. 이후 일본 귀족들이 다니던 도쿄문화원 문학부에 입학하지만, 1944년 중퇴해 도쿄출판배급주식회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에 회사를 나와 한동안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내기도 한다. 그는 해방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47년 월남한다.


김종삼은 고전 음악 마니아다. 그는 명동의 돌체’, ‘오아시스’, ‘라아뿌륌같은 고전 음악 감상실 단골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져 돌체가 부산 역 앞으로 옮겨간 뒤에도 여전히 그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김종삼은 1951년 시 돌각담으로 등단하지만 공식적인 문학 활동은 1953년에 종합잡지 신세계원정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종삼은 세 권의 시집 십이음계(삼애사, 1969), 시인학교(신현실사, 1977),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민음사, 1982), 두 권의 시선집 북치는 소년(민음사, 1979), 평화롭게(고려원, 1984) 200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는 1971년에 현대시학상, 1983년에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종삼의 초기 시는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순수시의 경향을 나타냈다. 이후 점차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했으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했다.


▲ 북치는 소년-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 가난한 아이에게 온 / 서양 나라에서 온 /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서 반짝이는 / 진눈깨비처럼. ⓒ오재욱 기자


▲ 민간인-김종삼, 1947년 봄 / 심야(深夜) /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孀兒)를 삼킨 곳. /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오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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