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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27 19:02:03
  • 수정 2018-02-27 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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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있다.


2011105일 개관한 기념관은 지하 2, 지상 2층에 연면적 1129규모로 역사 전시실과 영상 자료실, 학예실, 국채보상운동연구소, 휴게실 등이 들어섰다.


건립비 50억원 중에 98천여만원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민들이 낸 성금이다.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대한매일신보에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2천만 동포가 금연을 통해 모은 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는 취지문이 발표되자, 전국의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교를 뛰어 넘어 일본, 미국, 러시아의 동포들까지 참여한 모금운동으로 확대되어 한말 최대의 민족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1907년 말부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탄압과 발행인인 영국인 베델 추방 공작이 전개되고, 1908년에는 대한매일신보 총무인 양기탁에게 국채보상금을 횡령하였다는 혐의를 씌워 구속하는 등 일제의 탄압이 가속되자 국채보상운동이 크게 위축되어 좌절되고 말았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3개월이라는 단기간 동안 전개되고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 민족 자주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역사적인 운동으로 평가된다.


[취재 : 오재욱, 박정미 기자 / 촬영, 편집 : 오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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